윤혜숙
연극연출가
래빗홀씨어터 대표
혜화동1번지 7기 동인
학력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협동과정 공연예술학과 석사졸업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심리학과 졸업
경력
2020 <마른대지>, <우리는 이 도시에 함께 도착했다>
2019 <숨그네>, <보팔, Bhopal(1984~ )>
2018 <아리아 다 카포 Aria da capo>, <마른대지>, <우리는 이 도시에 함께 도착했다>
2017 <터무늬 있는 연극 X 인천>, <무언극 이불>, <후시기나 포켓또>
2016 <15분>, <작은문공장>, <오레스테이아>
심사평
두산연강예술상 심사는 참 어렵다. 심사위원들은 만 40세 이하의 연극인들 중에서 보석 같은 존재를 찾아내려 애쓴다. 몇 년 동안 수상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다시 올라오지 못하는 이들도 있고, 혜성처럼 나타난 존재가 있는가 하면 꾸준한 작업을 통해 믿음을 주는 이도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 심사위원 구성원이 동일했지만 작년에 거론된 후보들이 다시 언급되기보다는 새로운 후보들이 대거 등장했다. 수상 후보자들의 새로운 이름을 보며, 한동안 주목을 끌던 예술가가 작업을 잘 이어가지 못하면 염려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반짝이는 예술가들이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어 반갑기도 하다.
심사위원들은 적어도 하나의 공통된 지향을 지니고 있었다. 지속적인 작업을 전개하는 예술가인가, 작품들의 수준이 대체로 안정적이면서 특히 최근작들이 빛을 발하는 경우, 새로운 내용과 형식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태도 등이다. 그런 지향점에 부합하는 후보들 몇몇이 집중적으로 거론되었고 최종 수상자로 윤혜숙을 결정하는 데는 아주 쉽게 합의가 되었다.
우리에게 윤혜숙이라는 이름이 뇌리에 처음 각인된 것은 2015년 ‘팝업씨어터’ 사태를 통해서다. 2015년 가을, 검열 논란이 온 연극계를 뒤흔들고 있을 때 윤혜숙은 팝업씨어터 사건의 피해자 중 하나였다. 그는 당시 검열에 저항하는 의미로 팝업씨어터 참가작이었던 <후시기나 포켓또>의 공연을 접었다. 윤혜숙은 어느 인터뷰에서 그때 ‘잃어버린 15분’은 찾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과연 그 잃어버린 시간을 아직도 못 찾았을까.
윤혜숙은 최근에 <마른 대지>(2018, 2020), <보팔>(2019), <우리는 이 도시에 함께 도착했다>(2018, 2020) 등을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잘 확립해 가고 있다. <마른 대지>에서는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두 여학생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확립해 가는 과정을 치열한 심리적 갈등과 강렬한 에너지로 조화시켜 보여주었다. 혜화동 1번지 7기 동인으로서 ‘세월호 2019 제자리’에 참여했던 <보팔>에서는 대형 가스누출 사고의 처리 과정과 피해자들의 엄청난 고통을 통해 세월호 사건을 은유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 도시에 함께 도착했다>는 감염병이 창궐한 도시 속으로 목돈을 벌기 위해 일하러 간 두 젊은 여성을 통해 지금 여기의 코로나 시대를 예언적으로 보여주었다. ‘방’ 한 칸을 얻기 위해 출발한 낯선 도시로의 여정은 그들 스스로 지옥에 뛰어드는 행위였고, 감염병이 만연된 도시에는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윤혜숙은 배우들과 잘 소통하는 연출로 보인다. 그는 복잡한 무대 세트 없이도 배우들의 에너지로 극장을 가득 채운다. 배우들의 말과 몸은 빈 무대에서도 그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상황을 관객들이 충분히 상상할 수 있도록 북돋운다. 윤혜숙은 관객들을 편안한 감상자로 절대 놔두지 않고 끊임없이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그의 연극은 때로 극장이 터져 나갈 듯한 에너지로 팽창하다가 갑자기 정적인 분위기로 전환되어 냉철한 이성적 사유를 요구한다. <마른 대지>에서 낙태의 혈흔이 낭자한 바닥을 청소부가 꽤 오래 담담하게 청소하고 나가는 장면, <우리는 이 도시에 함께 도착했다>에서 배우의 몸이 굳어버려 한그루 나무가 되고 종국에는 바닥에 조명만으로 그의 죽음을 응시하게 하는 장면 등이 그러하다.
윤혜숙 연출은 자신의 작업에서 늘 ‘만일’의 상황을 예의주시한다. 타자는 물론 자신의 정의로움과 안위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신이 놓인 상황을 분석하고, 여러 방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와 조건들을 점검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작품 속에서 펼쳐지는 사태에 대해 가능한 한 객관적 시각을 견지하려 하며 이를 통해 최소한으로나마 공공에 대한 자신의 역할과 배려를 겸손하게 내비친다.
엄청난 이야기들이 최첨단 IT 기술에 기반한 다양한 채널을 통해 쉴 새 없이 쏟아져 쌍방향적인 변용의 과정을 거치며 무제한 공유되는 세상이다. 도처에 이야기들이 난무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정작 모두를 이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증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극장을 채울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연극의 언어로 오롯이 전환하는 것은 연출의 중요한 역할이자 과제다. 윤혜숙 연출은 희곡뿐 아니라 희곡을 넘은 다양한 텍스트 안에서 지금, 여기 우리가 사는 모습을 담은 이야기를 찾아낸다. 그리고 여타의 연극적 수사를 가능한 한 제거하고 그 이야기의 결을 최대한 살려 극장의 무대에서 공간화 한다.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수행하는 배우의 존재, 그 힘을 오롯이 마주할 수 있는 것, 그의 연극이 우리에게 주는 소중한 경험이다.
심사위원 김미도, 윤한솔, 이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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